침략전쟁 가해자 의식이 부족한 일본사회

▲ 박인식 일본학 박사
전후(戦後) 일본사회가 바라보는 침략전쟁과 원폭에 대한 시각은 ‘우리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같은 피해의식은 전형적으로 도쿄(東京)공습과 원폭에서 나타나고 있다.

히로시마(広島)·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것은 일본인이 전쟁의 참혹함을 아는 동시에 일본이 세계에 평화를 주창하는 것에도 대단히 유효했다. 더 이상의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 중에서는 원폭의 비참함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비판적 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쿄 대공습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일본인의 인식은 모두 「피해」 및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1982년 6월 26일자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은 일본 역사교과서 『세계사』 검정과정에서 “화베이에 침략(華北へ侵略)”을 검정과정에서 “화베이에 진출(華北に進出)”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심각한 외교 갈등 문제로 발전한 일이 있었고, 일본인의 전쟁인식에 조금씩 변화를 준 계기가 되었다.

일본국민은 「침략」에서 「진출」이라는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일본이 타국을 침략해 피 침략국에 피해를 준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이 자행한 전쟁이 침략이었다는 의식이 생겨 난 것이다. 일본인에게 전쟁이라고 하면, 원폭이나 도쿄 공습만이 아니고, 일본이 과거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것을 비롯해, 중국·동남 아시아로의 진출이 바로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 총리 아베는 우익관료들과 함께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정치인들이 침략전쟁의 가해자로서 반성보다는 피해자라는 역사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2013년 8월, 「히로시마 피폭 68년」 평화기념식전에서 아베(安倍晋三) 총리의 인사말에서 “우리들 일본인은 유일한 전쟁피폭 국민입니다.”라는 발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베 총리의 과거 침략전쟁의 역사인식 부족과 왜곡에 대한 반발이 침략피해국가와 시민단체에서 일어 났다. 한국과 북미, 브라질의 재외피폭자 등의 6개 단체는 일본정부에 항의하고, 정정을 촉구했다. 후생 노동부의 담당자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금후부터 되살리겠다.」라고 사용을 삼가하겠다는 정부방침을 전했다.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의 모임」의 이치바 준코(市場淳子) 회장 외, 10여 명이 국회를 방문해, 후생 노동성 원폭피폭자 원호대책실의 사카키바라 츠요시(榊原毅) 실장에게 「피폭자에게는 식민지정책으로 일본 국적을 부여된 한반도 출신자나 포로군인, 유학생이 있었다」라고 지적한 요청서를 건네줬다.
사카키바라 실장은 총리발언에 대해서 「피폭을 체험한 나라에 살고 경험을 공유하는 국민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라고 설명하면서 「일본국적 이외 쪽의 피폭을 부정할 작정은 털 끝만큼도 없다. 오해가 생기는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아베 내각은 아직까지도 반성없이 역사왜곡을 반복하며 도발을 하고 있다.

패전 74년을 맞이 한 금년 8월 15일에는 일정부 주최로 도쿄 무도관에서 개최된 ‘전국 전몰자 추모식’에서 일왕은 부친이 사용했던 “깊은 반성”이란 말로 에둘러 사과의 표현을 했지만 아베 총리는 어떠한 사죄나 반성의 말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망각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은폐를 통해 치부를 숨기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단순한 과거사건으로 축소 왜곡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이 한국인 원폭피해자 원호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후(戦後) 재외피폭자는 원호 대상으로 제외되어 일관해서 차별되어 왔다. 일본정부가 전쟁의 책임을 지고 피폭자의 원호를 자발적으로 제공한 적이 없이 피폭자가 사법부에 제소해 승소했을 경우만 원호대상이 되어 왔다. 전전 일본국가가 걸어 온 길 과정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쫀쫀한 국가의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일본정부는 증오와 억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평화유지와 인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진실되게 직시하고 과오에 대한 치유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전 대학교수)

▲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月26日~2007年 8月 27日)은 2006년 9월 26일 임시국회에서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된다. 전후 최연소로 처음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취임 당시의 국가상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제시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은 2012년 12월 26일, 제96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되어 현재에 이른다. 위의 사진은 아베신조(安部晋三)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 현, 우베(宇部)공항내에 “아름다운 나라 일본, 평화로운 일본” 슬로건을 내건 아베를 기념하는 각종 기념품이 즐비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헌법개정이나 일련의 정치행보를 보면, “아름다운 나라”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을 말하며, “평화로운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다.(우베(宇部)공항 현지촬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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